궤도, 김해연

초여름, 풋풋한 초록이 짙어지기 전, 아이들과 드라이브를 하며 계절과 색의 변화를 느끼곤 한다. 특히, 석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갈 때,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빛깔은 깊은 안정감을 준다.


눈으로만 담던 빛의 기억을 사진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초저녁 안개빛 같은 느낌으로
사진에 나의 정서적 기억을 담기 위해 1890년대 시네 카메라용으로 제작된 형석 렌즈를 디지털 바디에 맞게 개조하여 사용했다. 이 무코팅 렌즈는 조리개 값이 없어서, 피사체를 부드럽고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또한, 빛이 렌즈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회오리치는 듯한 독특한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빛의 굴절로 생겨난 피사체의 흔적을‘궤도’라고 생각한다. 이 궤적을 따라 시선을 좇다 보면, 어느새 빛의 궤도 속에 놓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한 피사체와 마주하게 된다. 밖에서 안으로, 흩어지는 듯하면서도 응축되는 에너지의 흐름, 여린 듯하지만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피사체, 그들만의 빛의 궤도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연약해 보이지만 결국 제 모습으로 꿋꿋이 서 있는 피사체, 빛의 굴절 흔적을 딛고 나아가는 존재의 궤적… 마당 한 켠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야생화는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을 받아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인생의 빛 또한 때로는 여러 환경에 의해 굴절되며 나만의 궤도를 그리고, 그 궤적은 결국 나를 빚어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굴곡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인생의 궤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