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적 공간, 김정선

유년 시절 한옥이 있는 동네에 살았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옥 나무 대문을 마주한 긴 골목길이 나타나는데 지금도 선명하다. 이런 골목길은 나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돌이켜 보면 집과 공간에 관심을 두게 하는 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건축에 관심을 두며 사진도 접했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에도 공간에 관한 관심이 계속되었다. 청주 모충동 재개발 지역과 사직동 재개발 지역의 사진 작업으로 이어졌고 우연한 기회에 지역 미술관에서 첫 발표를 가졌다.
코로나 시기가 찾아와 작업실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자연스레 나만의 공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사적인 공간을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기 위해 피사체에 대한 선명함을 거부하고 절제된 조형미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파란 현기증’이었다.
운천동 해방촌 작업은 뜻밖의 발견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아카이빙 프로젝트로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이곳은 사진 기록이 절실한 지역으로 해방촌 전체 이야기보다는 마지막 주민이 될 수도 있는 몇 가구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민들과 교감을 통해 해방촌의 공간과 사물을 집중적 카메라에 담았고, 결정적으로 사진가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작업은 중형카메라와 플래시를 사용하여 사진의 품질을 높였고, 지난 ‘파란 현기증’ 작업과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해 기록성보다 내면의 표현을 더 중점적으로 여겼다.
예쁘게 핀 민들레꽃을 바라보며 “저 꽃을 찍으러 빨리 와야 할 텐데”라고 말해준 동네 주민의 말씀에 이번 프로젝트가 의미 있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