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성의 변이, 김동엽

익숙함과 낯섦 사이, 도시의 복합적인 시간

<아성의 변이>는 오랫동안 살아왔고, 이제는 다소 거리를 두게 된 공간인 아파트를 다시 바라보며 시작된 작업이다. 유년 시절부터 20여 년간 아파트에서 살아왔고 그곳은 익숙한 일상의 배경이자 때로는 벗어나고 싶었던 장소였다. 성인이 되어 아파트를 떠난 후에 그 구조물들은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어떤 거리감과 낯섦이 공존하는 풍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청주 구도심을 걷다 보면 낡고 작은 아파트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균열진 벽면, 휘어진 창틀, 바랜 외벽 속에는 오래된 일상의 잔상과 유년의 기억이 스며 있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하늘을 덮는 높고 새하얀 초고층 아파트들이 나타난다. 하나의 시야 안에 익숙함과 낯섦, 기억과 단절이 동시에 들어올 때 그 이질감은 도시의 현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와 도시의 욕망이 겹쳐진 무대처럼 느껴진다.

전시 제목 ‘아성(牙城)’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구조를 의미한다. 지금 그 아성은 초고층 아파트들이 대신하고 있다. 반듯하고 효율적인 구조 속에 수많은 삶이 수직으로 쌓이며 도시는 그러한 풍경을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재편한다. 그러나 그 구조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반복되는 철거와 신축, 형태와 의미의 교체 속에서 아파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 흐름을 ‘변이(變異)’라는 단어로 붙잡고자 했다. 정해진 방향 없이 어긋나고 혼합되는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의 궤적이다.

이러한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 시기의 아파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촬영 장비와 접근법을 달리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풍경은 흐릿한 기억의 감각에 가까웠다. 오래된 수동 렌즈를 사용해 불완전한 초점과 빛의 번짐 속에 아스라한 세월의 결을 담고자 했다. 반면 초고층 아파트는 카메라 무브먼트를 활용해 수직적 구조와 그 안에 담긴 질서와 웅장함을 강조했다. 낮은 시점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를 통해 그 리듬과 압도감을 드러내고자 했다. 모든 사진은 흑백으로 촬영되었다. 색이 제거된 풍경 속에서 구조와 명암, 리듬만이 남았고 그것은 오히려 시간과 공간을 더 또렷하게 재구성하게 해주었다.

<아성의 변이>는 내가 살아온 도시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선의 기록이다. 낡고 오래된 공간과 새롭게 솟은 구조물들을 각자의 결로 바라보며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의 감정이 함께 담겼다. 이 사진들은 도시의 거대한 변화를 포착함과 동시에 그 변화 앞에 선 작고 사적인 시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지금 이곳, 충청북도 청주의 현재를 이야기한다. 익숙한 거리 위에 겹쳐진 시간과 구조, 기억과 미래, 부유하는 감정과 구체적인 구조물들이 중첩된 이 풍경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이 사진들이 잠시라도 그 변이의 결을 따라가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