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일정
2025년 12월 17일 – 12월 23일
오프닝 및 토론 오전 10시 30분
참여작가
박난희 이다경 이종은 이진영 정성욱 정이품 진주희
토론
유정현
물 아래로 가라앉은 삶이 있는가 하면 물 밖에 남았지만 이제는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마을들이 있다. 이 전시는 바로 그 ‘두 번 사라지는 마을’의 기록이다.
대청댐 건설로 사라진 수몰 마을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마주한 현실은 또 하나의 상실이다. 수몰의 경계에 남아 있던 수변 마을들마저 인구 소멸과 공동체 해체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지도에는 이름이 남았지만 실제 삶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는 공간들. 이 기록은 그 마지막 시간을 붙잡고자 한 지역 사진가의 지속적인 현장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 작업이 지금 서울에서 전시되어야 하는가.
첫째, 소멸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충북의 작은 수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미 한국 전역의 농촌, 산촌, 어촌이 겪고 있는 공통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서울의 관객이 이 사진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지역의 이야기를 타지역의 이야기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함께 직면해야 할 구조적 변화’를 바라보는 일과 같다.
둘째, 지역 기록은 그 지역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마을의 기억이 지역 내부에서만 소비될 때 기억은 곧 잊힘으로 이어진다. 이 기록이 서울이라는 문화적 중심에서 공유될 때 비로소 지역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 전체의 서사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역 아카이브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셋째, 도시의 관객은 사라짐을 경험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기에 더 많이 봐야 한다.
도시는 늘 새롭게 구축되며 변화의 여파로 인해 오래된 것들이 순식간에 지워져도 그 상실을 체감하기 어렵다. 반면 충북의 수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멸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최전선이며 기록되지 않으면 곧 영영 사라진다. 서울에서 이 작업을 보여주는 일은 ‘보이지 않는 상실’을 드러내는 시민적 행위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풍경 기록이 아니다.
물에 잠긴 과거와 사라져가는 현재의 마을이 한 장의 이미지 안에서 조용히 겹쳐지는 장면들은 우리가 놓쳐온 공동체의 마지막 빛을 보여준다.
사진은 질문한다.
“이곳이 사라져도 괜찮은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서울 충북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사라지는 마을의 이야기가 충북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공동의 기억임을 말하고자 한다.
옥천에서 활동하는 7인의 사진가는 보오리, 이평리, 지오리, 석호리를 중심으로 대청호 수변마을을 기록했다. 이 네 마을을 기록해 온 이유는 단순하다. 지역의 사라짐을 가장 먼저 감각하는 사람은 늘 그 땅을 딛고 살아온 이들이다. 그래서 이 기록은 ‘외부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지역 스스로의 증언이자 공동체의 자필 서명 같은 기록이다.

박난희의 사진은 대청호의 고요함을 가장 깊이 포착한다. 물 위에 반사된 산과 하늘은 현실과 과거의 경계를 흐리게 하며 수몰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한 장면을 만든다. 바위와 풀, 잔물결 같은 작은 요소들은 사라진 마을의 흔적을 대신 말한다.

이진영은 오래된 집의 벽면 기울어진 지붕, 금이 간 석축 등 마을의 물리적 해체를 세밀하게 기록한다. 이 사진은 사람이 떠난 뒤 남은 집들이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버티고 있는지 보여준다. 철판과 목재의 촉감, 밝은 하늘과 대비되는 붉은 벽의 색감은 마을의 마지막 생명 신호처럼 다가온다.

정성욱의 작업은 강한 녹조와 녹색 수면을 가득 채운 초록빛을 통해 대청호가 겪는 환경 변화까지 포착한다. 물 위에 떠 있는 구조물, 풀에 엉킨 로프, 정체된 물의 색은 마을이 사라지는 현상이 단순한 인구 소멸이 아니라 환경과 생태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이품의 사진은 수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부부를 따뜻하게 담아낸다. 일의 도구를 들고 선 모습, 옷에 묻은 흙, 미소 속의 단단함은 마을이 가진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사의 기록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마을을 잃어버린 공간으로 보지 않고,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했던 마을의 본질을 보여준다.

진주희는 집과 호수, 골목과 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마을의 공간적 리듬을 기록한다. 돌계단, 열린 문, 아래로 내려가는 길, 이 모든 요소가 마을의 방향성과 구조를 말해준다.사라져가는 마을을 가장 물리적인 감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다경의 사진은 실제로 마을의 심장부에 가까운 기록이다. 벽에 붙은 가족사진들, 결혼식과 생일잔치, 집안의 성취와 기쁨이 담긴 액자들은 마을의 역사이자 한 집안의 연대기다. 이 사진은 마을이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세대의 서사가 쌓인 삶의 총량임을 보여준다.

이종은의 사진은 작은 집 앞의 빨래, 걸린 바지, 말려가는 빨래줄과 쌓여 있는 생활도구 등이 구현하는 마지막 일상성을 기록한다. 이 장면은 아무것도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마을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고 가장 나중에 기억되는 것이 바로 이런 ‘생활의 디테일’이다.
이번 전시는 사라지는 마을을 애도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소멸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최소한의 기록 행위이고 우리가 끝까지 기억해야 할 삶의 자리들에 대한 증언이다. 기억이 지역을 넘어 모두의 것이 되어야 사라짐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